골방소년, 그만의 감성.



전자양 - Mavellou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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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새로 알게된 해파리소년의 곡이다.

꽤 들을만한듯..


해파리소년 - Everyday trou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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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싱글이 발매된지 약 1년 6개월쯤 됐을무렵

챠라에 대해 알게되었고

그녀의 보컬에, 부드러운 베이스에 이끌릴 수 밖에 없었다

히데에 빠져살았던 그해 여름,

챠라는 가을과 겨울을 함께했고 그 해의 생생한 기억은

이 곡의 두툼한 베이스에 묻혀있다.


Chara - レモンキャンデ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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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Uzi - 어린시절

muziq 2006. 4. 1. 20:47

이번곡은.. 앨범으로 발매된 곡이 아니라 표지가 없다.

힙합언더씬에서 유명한 DJ Uzi의 곡인데..

앨범 낸다는얘기만 몇년째 들은건지 -_-;;

이 곡은.. 우지와 진말페(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의 손전도사와 오박사..

그리고 mc현상이 랩핑을 한걸로 알고있다



재생버튼을 클릭하는순간

4년전으로 날라가게되는 곡이다

짙은 안개속의 어두운 바다,

그 자갈밭에서의 희미한 불빛..

재수생시절.. 오랜친구 L군과 같이

표면목적은 공부, 실목적은 놀러갔던 한국해양대학교에서

저녁내도록 함께했었던, LG사의 mp3p였던 MPfree에 담겨 있었던 이 곡은..

분명,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곡들 중 한곡임에 분명하리

DJ Uzi - 어린시절






이건 보너스로.. dj uzi곡중에 가장 좋아하는 두곡중 하나인

'고백(remake)'라는 곡이다.

물론 하나는 어린시절.. ㅎㅎ

원곡은 절정신운 한아의 곡인데.. 우지가 리메이크한거같다;;

우지와 한아가 랩핑을 했고.. SUI가 코러스를 넣은것으로 알고있다.



DJ Uzi - 고백(Rem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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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악은 카메라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번곡은.. 바로 밑에 써놓은 trash란 곡보다

시기적으로 약간 앞서있는 곡이다

학교다니면서 주로 들었던곡이니..



별 문제 없이 지내왔다면 아마 이시간에 글을 쓰고있지도 못했을텐데

중간에 큰 문제가 발생했었기에, trash를 알게 되었고

이시간에 음악과, 키보드와 함께 할 수 있는것이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만 했던 일이지만,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지만

일어나버렸기에..

하지만, 어쩌랴. 나는 지금 살아있는걸.


허밍 어반 스테레오 - 샐러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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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de - Trash

muziq 2006. 4. 1. 20:07



Suede - Tr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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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vet Underground.

muziq 2006. 3. 29. 00:20





네. 그 유명한 바나나 앨범입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모르더라도 이 표지는 한번쯤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네, 벨벳 언더그라운드입니다.

이 곡은 Sweet Jane.






벨벳 언더그라운드에 거주한 인물들은 여럿이지만 먼저 꼽아야 할 이들은 초창기 멤버였던

루 리드(Lou Reed기타, 보컬), 존 케일(John Cale 비올라, 베이스, 키보드), 스털링 모리슨(Sterling Morrison 베이스, 기타), 그리고 모린 터커(Maureen Tucker 드럼)의 4인이다.



64년경 뉴욕의 한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루 리드와 존 케일의 우연한 만남은

곧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밴드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1943년 뉴욕주 외곽의 평범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루 리드(본명 Louis Firbank)는 어려서부터 록음악의 모태가 되는

50년대 두왑이나 R&B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뉴욕의 시라큐즈 대학에 입학하여 저널리즘을 공부하던 동안에는 그리니치 빌리지와 소호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비트 문화와 전위적인 예술운동에 빠져들었다. 비트문화는 기성질서와

도덕에 대한 부정과 삶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특징인데 후일 벨벳에서 보여주는

그의 독특한 노랫말은 바로 이와 같은 배경속에서 그 싹을 틔우고 있었다.



반면 영국의 웨일즈 태생인 존 케일(40년생)은 여덟살 때 BBC방송에 출연해서

비올라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등 어려서부터 꾸준히 클래식을 공부한 인물로 레너드

번스타인 장학금 수혜자가 되어 미국에 유학을 와있던 중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건너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아방가르드 음악에 심취하여 드림

아카데미(Dream Academy)라는 실험음악 앙상블 프로젝트에서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었다.



물론 이곳에서의 경험은 후일 벨벳 언더그라운드에서 들려주는

그의 독특한 비올라 연주로 연결되었다.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을 지니고 성장했지만

변화의 바람을 주도하고 있던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아방가르드와 록을 결합하려는

공통의 비전을 가지고 맞닥뜨린 두사람. 리드는 시라큐즈 대학에서 함께 창작활동을 하던

기타리스트 스털링 모리슨(본명 Holmes Sterling Morrison, 42년생)을, 케일은

자신의 이웃이었던 앵거스 맥리스(Angus MacLise)를 퍼커셔니스트로 각각 끌어들여

순식간에 4인조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탄생하였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은

맥리스가 싸구려 포르노잡지의 제목을 따온 것이었다.



이들은 루 리드가 한때 작곡가로서 일했던 픽윅 레코드사를 통해 몇 개의 싱글을 레코딩하고

무료 공연을 벌이곤 했다.

그러던 중 벨벳의 공연을 관람한 앤디 워홀이 이들의 매니저를 자청하고 나서면서

벨벳의 음악활동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워홀은 소음이 난무하는 벨벳의 음악에 대중들이

들을만한 거리를 집어넣겠다는 의도로 헝가리 태생의 아름다운 모델이자 영화배우, 가수인

니코(Nico)를 새로운 멤버로 가입시킨다.



그러나 이미 꽉 짜인 진용을 갖추고 있던 벨벳은 더 이상의 멤버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이들은 니코를 게스트 보컬 정도로만 여겼다. 이무렵 맥리스가 돌연 네팔로 떠나면서 밴드를

탈퇴해 벨벳은 데뷔앨범 한 장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당황스런 상황에 빠졌다.



부랴부랴 리드, 스털링과 시라큐즈 대학에서 함께 수학하던 친구의 여동생 모린 터커(45년생)로

드러머의 공석을 메꾸면서 벳벳은 다시 재가동할 수 있었다. 모린 터커의 본업은 사실

컴퓨터 프로그래머였지만 이와같은 멤버 변동은 결과적으로 벨벳의 사운드에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초창기 그녀는 '모 터커(Moe Tucker)'라는 애칭을 사용한데다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남자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드럼 플레이도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성질의 것이었다.


앤디 워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벨벳은 데뷔앨범 [Velvet Underground & Nico](67)를

제작한다. 이 앨범은 불과 8시간만에 스튜디오 라이브 형식으로 만들어졌으며

니코는 여기서 3곡의 노래를 불렀다. 앨범의 아트워크는 벨벳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노란색 바나나.

앤디 워홀이 솜씨를 발휘한 이 선명하고 단순한 바나나 실크스크린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핑크색 속살을 감추고 있었다.



(청바지 사진에 진짜 지퍼가 달려 있어서 이것을 열면 팬티가 보이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Sticky Fingers] LP 재킷도 앤디 워홀의 작품이다) 앨범 재킷에서 이미 공공연히 천명하고

있는 것처럼 벨벳의 데뷔앨범에 담긴 내용도 거들먹거리며 점잔빼는 사람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만한 종류였다.



26달러를 손에 쥐고 길모퉁이에서 마약판매상을 기다리는 청년의 이야기 'I'm Waiting For My Man', 가죽 부츠를 신고 채찍을 손에 든 비너스의 모습을 묘사하며 사도마조히즘을

표현한 'Venus In Furs', 마약에 취해 삶을 갉아먹는 모습을 직시하고 있는 'Heroin'등

지금 들어도 충격적인 가사가 당시에 사람들을 얼마나 황당케 했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벨벳은 이런 노래들을 통해 마약과 프리섹스를 통해 자신들의 자유와 이상을 구현하고자 했던

히피들의 문화에 날선 비판을 가했다.



스털링 모리슨의 말을 인용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교회로 가고 찬란한 태양이 떠오른

일요일 아침, 마치 드라큘라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묘사하고 있는 'Sunday Morning'이나

'Femme Fatal', 'I'll Be Your Mirror', 'There She Goes Again'등 역시 어둡게

가라앉은 처연한 서정미로 각양각색의 인간군상을 표현하고 있다.



기타 코드는 두세개, 모린 터커의 의도적으로 다듬지 않은 반복적이고 거친 비트,

현을 스크래치하여 마치 드론 사운드처럼 엮어내는 케일의 비올라 연주, 그리고

'Sunday Morning'같은 아름답고 감미로운 팝멜로디와 'European Son'같은 소음의

카오스가 동일한 무게로 배치된 [Velvet Underground & Nico]는 대중음악에 새로운 문을

열어젖혔지만 대중들은 아직도 문 저편에 머무르기를 원했다.

이 앨범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폭풍처럼 강렬한 반향을 일으킨 후 잊혀져 버렸다.



대부분의 곡들이 라디오 방송에서 금지곡으로 묶였을 뿐만 아니라 비틀즈(Beatles)의

사이키델릭 명반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찬양받고 있던 해에

용감무쌍한 전위부대 벨벳의 음악이 파고들어갈 틈새는 너무나 좁았다.

한편 니코는 특유의 차가운 고딕풍의 보컬톤으로 루 리드가 작곡한 'Femme Fatal', 'I'll Be Your Mirror', 'All Tomorrows Paties'을 불러 벨벳의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지만

밴드 내에서 그녀의 위치란 매우 어정쩡했다.



특히 라이브 공연시에 그녀가 무대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루 리드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탬버린을 흔드는 게 고작이었다. 그나마 그녀는 공연때마다 늦게 나타나고 심지어

보스턴 공연에서는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 공연장에 도착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결국 멤버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이래저래 겉돌던 그녀는 데뷔앨범을 끝으로 밴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이런 저간의 사정과는 별도로 루 리드와 존 케일이

니코의 솔로 앨범 [Chelsea Girl](67)의 제작에 참여하여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이 앨범에는 벨벳의 미발표곡 등 루 리드가 작곡한 곡이 여럿 수록돼 있다.

존 케일은 이후에도 그녀의 솔로 앨범 몇장을 프로듀스해 주었다



니코를 퇴출한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이듬해

두 번째 앨범 [White Light/White Heat](68)를 발매한다. 데뷔작이 여러 가지면에서

앤디 워홀의 입김이 강하게 끼쳤던 앨범이었던 반면 이 앨범에서부터는 벨벳의 독자적인

노선이 확립되었다.



그동안 워홀과 벨벳은 마치 패트런과 하우스 밴드 사이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워홀이 자금을 대는 대신 그는 니코를 가담시키는 등 밴드의 사운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벨벳은 그의 팝아트 퍼포먼스에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벨벳을 워홀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오해하기까지 했다. [Velvet Underground & Nico] 앨범 재킷 하단에 큼지막하게 찍힌 'Andy Wahol'이란 이름은

역설하는 바가 크다.



벨벳은 [White Light/White Heat]를 준비하며 워홀과의 관계를 청산하고자 했다.

이 앨범에서 워홀이 한 역할이라고는 앨범의 재킷을 새카맣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뿐이다.

워홀의 참견(?)에서 벗어나고 니코가 빠진 벨벳은 데뷔작보다 훨씬 강도 센 노이즈를 만들어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정색 일색의 앨범 재킷의 이미지대로 이들은 지독하게 증폭시킨

기타 디스토션과 피드백으로 어둠침침하고 거친 소음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여전히 어둡고 부도덕하며 잔인한 공격성을 띤 루 리드의 가사 또한 소닉 테러리즘과 아귀를

맞추고 있었다.



'White Light/White Heat'라는 타이틀은 헤로인을 주입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히피들이 LSD를 상용했던 것과 달리 벨벳의 음악에는 헤로인이라는 마약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데

멤버들이 실제로 헤로인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앨범 역시 상업적으로는

완전히 참패작이었다. 계속된 실패로 밴드 멤버들은 패배적인 분위기에 쌓였고 급기야

벨벳의 사운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루 리드와 존 케일간의 음악적인 견해 차이가 심각하게

불거지기 시작했다. 매우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던 이 두사람은 술을 마시며 음악에 대한 토론을 하다

아주 험악한 분위기로 치닫기도 하는 등 반목의 골이 깊어졌고 마침내 존 케일이 팀에서 해고되는

사태로 일단락되었다. 케일의 퇴출은 단 한번의 토론이나 언질도 없이 루 리드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졌고 스털링 모리슨이 케일의 아파트로 찾아가 통고한 것이 전부였다.



이쯤 되면 두사람이 다시는 얼굴도 마주하지 않을 것 같겠지만 웬걸, 니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두사람은 앤디 워홀의 인생을 노래한 컨셉트 앨범 [Songs For Drella](90)를 합작하는 등

음악적인 협력관계를 꾸준히 유지했다. 한 밴드내에서 두사람의 상반되는 음악적 성향과 기질을

하나로 묶는 것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리드와 케일은

서로의 역량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케일의 자리는 보스톤 츨신의 포크록 그룹

에덴스 칠드런(Eden's Children)과 그래스 미내저리(Grass Menagerie) 등에서

활동하던 덕 율(Doug Yule 베이스, 키보드)로 채워졌다.



존 케일이 빠졌지만 벨벳의 세 번째 앨범 [Velvet Undergrond](69)는 이듬해 봄 순조롭게

레코딩되었다. 밴드의 세력을 장악한 루 리드는 전작들에 비해 불협화음과 소음을 줄이고

서정적인 팝송들을 많이 배치하였는데 'Pale Blue Eyes', 'Candy Says'같은 감미로운 곡들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리퀘스트되는 명곡이다. 노랫말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부드러워져서

루 리드의 개인적인 감상으로 이루어진 것도 많다. 'Pale Blue Eyes'만 해도 한때 그가 흠모했던

여인에 대한 사념을 노래한 것이고 'Candy Says'는 앤디 워홀의 패밀리 중 하나이자

바이섹슈얼로 유명했던 캔디 달링(Candy Darling)을 모델로 한 것이다.



'The Murder Mystery'는 루 리드와 스털링 모리슨이 서로 다른 노랫말을 한명은 빠르게

한명은 느리게 나레이션하는 곡으로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더 재미있다. 매우 흥미로운 발상이라

생각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바로 그런 점을 노린 것이겠지만).

멤버들의 말에 따르면 이 나레이션에는 벨벳 언더그라운의 생활에 대한 개인적인 얘기들도

약간 등장한다고 한다. 마지막 트랙 'After Hours'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드러머 모린 터커이다.

그녀는 노래부르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해서 이 노래를 녹음할 때는 모든 사람들을 스튜디오

밖으로 ?아냈다고 한다. 그녀의 순수하고 맑은 목소리는 전체적으로 감상적이고 아름다운

이 앨범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벨벳은 계속해서 통산 네 번째이자 더블 앨범인 [Loaded](70)를 발표하는데 불행히도 앨범을

레코딩하기도 전에 루 리드가 밴드를 탈퇴해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모린 터커마저 임신중이라 앨범 제작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임시로 덕의 동생

빌리 율(Billy Yule)이 드럼파트를 맡았다. 주도적인 멤버들이 대부분 부재한 상태에서

초기의 성가신 화음들이 배제되고 깔끔, 예쁘장한 곡들로 꾸며진 이 앨범은 벨벳의 앨범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된다. 'Sweet Jane', 'Rock & Roll' 등이 상당한 인기를

모으며 차트에서도 작으나마 성과를 거두었다. 벨벳의 곡 대부분을 작곡하고 밴드를 이끌었던

루 리드는 이러한 결실을 맛보지 못한 채 이후 2년여간 아버지의 회계사 사무실에서

주급 40달러를 받으며 서기로 일했다.



호랑이 떠난 골에 여우가 왕이 된다고 스털링 모리슨마저 떠나버린 벨벳에서 리더의 자리는

덕율의 것이었다. 그는 창단멤버들이 하나도 남지않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이름을 계속

유지하며 윌리 알렉산더(Willie Alexander), 이언 페이스(Ian Paice)등을 영입하여

새앨범 [Squeeze](73)를 발표한다. 그러나 진부하기 짝이없는 이 앨범은 혹평을 면치 못했고

그간 쌓아온 벨벳의 명성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서자'로 통칭되는 이 앨범은

일반적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정규앨범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73년 마침내 덕 율의 벨벳까지 공중분해된 후 시간이 흐르면서 벨벳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앨범이 하나둘 재발매되었고 분실된 마스터테입을 찾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미발표곡 모음집 [Vu](85)와 베스트 앨범 [The Best Of The Velvet Underground](89),

표지의 노란색 바나나를 스티커로 만들어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팬서비스용 5장들이

박스세트 [Peel Slowly And See](95) 등 각종 컴필레이션 앨범들도 속속 선보였다.

[Velvet Underground & Nico]와 동일한 앨범 재킷이지만 자세히 보면 노란색

바나나옆에 'Peel Slowly And See (천천히 벗겨내고 보시오)'라는 낯뜨겁게

암시적인 문구가 적힌 [Peel Slowly And See]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데모 버전과

라이브 버전, 믹스 버전 등도 수록돼 있어 콜렉터스 아이템으로 주목받았다.



회계사무소 직원으로 일하던 루 리드는 영국으로 건너가 새롭게 음악활동을 구상한다.

그때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열광적인 팬이었던 데이빗 보위를 만나게 되고 그의 프로듀스로

솔로 데뷔앨범 [Transformer](72)를 발표, 'Walk On The Wild Side'를

미국 차트 16위에 올리며 처음으로 그럴듯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앨범 역시 미국차트 29위에 랭크되었다. '어둠의 왕자(Price Of Dark)'라는

그의 별명답게 복장도착자, 동성연애자, 매춘부, 마약중독자 등 뉴욕의 어두운 인간군상들

(특히 워홀 주변의 기괴한 인물들)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 이 앨범은 루 리드의 역량이

집약된 명반으로 여기 수록된 'Satelite Of Love'는 영화

[벨벳 골드마인(Velvet Goldmine)]에, 'Perfect Day'는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의 사운드트랙에 각각 쓰이며 재이슈되기도 했다.



눈에는 짙은 마스카라를, 손톱에는 검은색 매니큐어를 칠한 모습으로 변신한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앨범을 통해 그는 글램록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표출했다.

계속해서 그는 [Rock & Roll Animal](74), [Coney Island Baby](76),

[The Blue Mask](82), [Songs For Drella](90) 등 주목할만한 일련의 솔로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데이빗 보위, 닐 영(Neil Young) 등과 함께 록음악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사로서 자리를 굳혔다. 최근에는 [Ecstasy](2000)라는 신보를 발표해 다시한번 저력을

과시한 바 있다. 존 케일은 벨벳을 탈퇴한 이후 밴드시절과는 크게 다른 성향의 실험적이고

프로그레시브한 솔로앨범들을 끊임없이 발표하며 호평받았다.



그는 또 프로듀서로서의 명성도 동시에 쌓아갔는데 니코와 브라이언 이노, 해피 먼데이스(Happy Mondays) 등의 앨범을 비롯해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명반 [Hoses](75) 등이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이다. 벨벳에서 아름다운 선율의 기타 플레이를 들려주었던

스털링 모리슨은 밴드 탈퇴 후 멕시코만에서 어선의 선장으로 일하다가

95년 호지킨병으로 사망하였다.



임신으로 벨벳을 잠시 떠나있던 때 밴드의 창단멤버들이 다 흩어져버려 본의아니게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모린 터커는 80년대 들어서 [Playin' Possum](81),

[Life In Exile After Abdication](89) 등의 인상적인 솔로앨범을 발표하며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여성 로커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짧은 재적기간이었지만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디바로 기록되는 니코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영화 [Dol Ce Vita] 등에

출연하기도 했던 재능있는 영화배우이자 싱어였다.



그녀는 수준높은 데뷔작 [Chelsea Girl](67)에 이어서 [Desert Shore](71),

[The End](74) 등의 솔로앨범을 계속 발표하며 팝싱어로서 인기를 누렸으나

88년 자전거를 타다 심하게 넘어진 것이 뇌출혈을 일으켜 갑작스럽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차라리 만들지 않았으면 좋았을 앨범 [Squeeze]로 망신살을 뻗쳤던 덕 율은 사실 나름대로

재능있는 뮤지션이었다. 그는 73년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을 포기한 후에

아메리칸 플라이어(American Flyer)란 컨트리록 밴드에서 활동하다가 70년대 후반에는

루 리드의 투어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 루 리드, 존 케일, 스털링 모리슨, 모린 터커는 93년과

94년에 잠깐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재결성하여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으나 몇번의 라이브 공연을

끝으로 아쉽게도 다시 각자의 솔로 작업에 복귀했다.

그리고 96년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Rock And Roll Hall Of Fame)에

당당히 입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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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la tengo - Sugarcube

muziq 2006. 3. 28. 23:57





강력한 디스토션에 영광을-


Yo la tengo - Sugarc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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